말을 통해 만나는 과거, 현재, 미래

박혜진

현세진 개인전 《우리가 만나는 이곳》(2023)은 작가가 살면서 마주친 ‘말들’에서 출발한다. 그 말들은 볼풀 또는 담요/깃발에 새겨져 관객과 만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무형의 말들이 물질화되어 관객의 신체와 접촉하게 된다. 또한, 전시에는 작가의 기억 속 말들이 존재하는 과거, 전시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전시 중 관객들이 남겨놓은 말들이 구성할 관계를 전제로 한 미래 시제들이 섞여있다. 전시에서 관객은 여러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만나는 퍼포머가 되며, 이들의 참여는 결과보다는 과정(process)에 방점을 두고 있는 본 전시의 특징을 반영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업은 전시 제목과 같은 제목을 가진 〈우리가 만나는 이곳〉(2023)이다. 작가가 주변인으로부터 들은 말들 중 영향을 받았던 문장 스무 개를 기억에서 꺼내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책이나 낭독과 같이 말을 옮기는 일반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전시공간 한편에 만들어 놓은 널찍한 볼풀을 통해 그 말들을 공유한다. 볼풀에는 야구공만 한 반투명 플라스틱 공들이 웬만한 성인 허벅지 높이까지 차 있는데, 관객은 신발을 벗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미술 전시에서 몸을 써서 작품에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관객들은 다소 어색한 몸짓으로 볼풀 안으로 발을 디뎌 바닥이 어디쯤인지부터 가늠본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볼풀의 상황에 익숙해져 보려 하지만 의외로 발을 옮기기 힘들어 몇 번은 휘청거리기도 한다. 어릴 때는 자유롭게 엎어지고 헤엄치며 놀았을 텐데 성인의 신체는 (주변의 눈을 의식하게 되는 등) 관습적으로 행동반경이 통제된 지 좀 되어 그런지 대부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정도로 조심스레 작품에 섞여본다. 그 와중에 볼풀에 들어와 있는 다른 관객의 동선이나 그들과 자신 사이의 공간이나 거리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게 된다. 어린시절과는 정반대로 볼풀이라는 장치가 오히려 시선이 되었든 신체 자체가 되었든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때 반투명 공들 몇 개에 쓰인 글씨들이 눈에 띌 것이다. “You’ll get there(원하는 곳에 도달할 거예요).” “헤매도 같이 헤매요.” “미술하는 삶에는 장점이 많다.” 등 짧지만 바로 이입되는 글귀들을 읽으며 다른 문장이 쓰인 공들도 찾아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볼풀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공들에 적힌 문구에 이입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몸보다는 머리가 더 빠르게 반응하는 성인에게 〈우리가 만나는 이곳〉은 마음을 움직이는 글귀들을 읽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말들을 공이라는 매개체에 적어 몸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말이 내게 가하는 영향력을 가시화하기도 한다. 가볍고 존재감 미미한 반투명 플라스틱 공들이 모여 나의 몸을 받쳐 주기도, 밀기도, 감싸주기도 한다. 말들도 마찬가지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몸이 잠시나마 유년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볼풀은 공에 적힌 문장들을 통해 어른들에게 위안과 힘을 주는 것 같다.

볼풀 한쪽 벽면에 설치된 〈깃발-담요〉(2023)는 전시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작업이다. “Everything has been figured out, except how to live(모든 게 정리되었어, 어떻게 살 지만 빼고)”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걸려있고, 그 옆 벽면에는 문장이 자수로 새겨진 빨강, 파랑, 노랑 담요가 걸려있다. 작가는 학교 졸업을 앞두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뽑은 사탕종이에 쓰여 있던 이 문구가 크게 와닿았다고 말한다. 학교를 마치고(모든 게 정리되고) 사회로 나가는 순간(어떻게 살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문구를 기억하기 위해 사탕종이를 액자에 넣어 작업실에 걸어 놓았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서 그 액자를 떼어와 전시장에 걸고, 담요를 만들어 관객이 둘러쓰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설치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깃발과 따뜻한 위로를 주는 담요라는 물체의 상징성을 문장과 결합해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다. 볼풀의 문장 공들처럼 말이 물체와 결합하면서 관객의 신체와 물리적으로 만나게 되고, 말의 의미가 형상화되고 구체화된다.

한편, 〈우리가 만났던 그곳〉(2023)은 작가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만남 네 건을 짧은 무성 영상과 오브제로써 소개한 작업이다. 〈밀수포도와인〉(2023)은 해외에서 방문한 작가의 친구가 가방 속에 포도를 넣은 채 공항 검색대를 그대로 통과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포도를 ‘밀수’해 오게 된 사건을 소개한 영상으로, 작가는 밀수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영상과 함께 전시하였다. 〈고양이 이산가족〉(2023)은 작가가 고양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입양 예정이었던 고양이의 형제가 집에 오게 된 일을 소개하며 입양묘 대신 “그녀석”과 하루를 지내게 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작가는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자신을 스쳐간 짧은 인연을 기억하고 그 녀석의 안녕을 빌어주기 위해 작은 고양이 조각을 만들어 함께 전시했다. 〈겨울나기〉(2023)는 마당에 심은 오렌지 재스민이 겨울을 날 수 있게 화분에 옮겨 실내로 들여놓은 과정의 기록으로, 옮겨 심은 재스민 화분을 함께 전시하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2023)은 ‘물결 위에서 반짝이는 빛’ 정도로만 알고 있던 현상이 “윤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더 기억에 오래 남고 특별해진 경험을 풀어놓은 영상이다.

꽤 사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과거 기억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 살면서 맺는 다양한 관계를 떠올리게 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다양한 일들을 겪고, 넘치게 많은 정보를 소화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쓱 스쳐갈 소소한 감정들은 인지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고, 대단히 인상적이지도 않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전쟁의 참상마저 적나라하게 미디어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꽤 무디어진 인간의 감정이 이렇게 일상의 작은 사건으로도 꿈틀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며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릴 시간을 주는 것 같다. 현세진은 그렇게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의 눈으로 찰나의 순간 들었던 감정을 붙들어 기억 속에 간직했다가 작업으로 관객과 공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와인 맛만큼 무르익어가는 관계,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점점 흐릿해지는 대상을 메모리얼처럼 조각으로 만들어 기리는 일, 변화하는 환경 속의 인간관계를 돌보듯이 바뀌는 환경을 반영해 정성 들여 돌봐야 하는 식물의 존재, 물리적인 물체는 아니지만 추상적인 인상이었던 자연현상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구체화되고 특별해지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형의 기억을 와인, 조각, 식물, 특정 단어 등 상징성을 가진 물체나 언어로 구체화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그 사건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있다. 밀수된 포도 사건은 숙성되는 와인으로 만들어져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 되었고,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와인을 열 예정이기에 미래에도 지속될 시간이라는 점까지 암시한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과거의 하루는 고양이 조각이 되어 작가의 현재에 여전히 함께 하고 있고, 봄, 여름에 마당에 있었던 식물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작가의 공간에 들어와 현재 함께 머물고 있다. 이와 함께 그 당시의 감정 또한 과거에서 업데이트되며 현재로 계속해서 소환된다.

시제의 중첩은 〈우리가 만나는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볼풀로 들어가는 관객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과 만나기도 하고, 공에 적힌 문장으로 대표되는 작가의 과거 기억과 만나기도 한다. 또한 관객은 적고 싶은 문장을 남겨놓음으로써 본인이 현재 이 공간에 머물렀음을 증거로 남기면서 과거가 되고, 미래에 다른 관객의 현재와 조우할 기회를 남겨두고 떠난다. 〈우리가 만나는 이곳〉은 전시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해서 변화를 겪게 되며,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마다 각자 다른 현재를 맞이한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전시기간 중 전시장 현장에 실재(present)함으로써 현재라는 매 순간을 몸소 경험하고, 작품의 미래를 관객과 만들어간다.

한편, 전시 기간 중 관객이 공유하고 싶은 문장을 남겨놓은 색깔 공은 안락의자 모양의 투명 고무/비닐에 채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우리가 만날 이곳-에어소파〉(2023)는 작품에 잠재된 미래의 시간을 보여준다. 관객의 말들이 모여 사용자를 지탱하는 든든한 의자가 되는 모습인데, 무엇보다 전시 기간 중 관객의 참여가 모여 미래에 완료될 작업이라는 점에서 과정(process)에 방점을 둔 작업이자 현재라는 매 순간을 모은 결과를 가시화한 작업이다.

시제 또는 시간의 흐름은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제목을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지은 것만 봐도 그렇지만, 이것은 비단 전시를 구성하는 작업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작가의 개인전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도 관계가 있다. 전시의 시작점이 되었던 〈깃발-담요〉는 시기적으로 학생 신분이 과거가 되고 작가 신분이 현재와 미래가 될 기점을 표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현세진의 사회적 위치, 그 변화에 대해 한 진지한 고민 끝에 발견한 해답의 실마리가 사탕종이 문구로 대변된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이곳》은 현세진이 석사 유학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연 개인전이다. 졸업 후 개인전을 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는데, 아마 가장 자신다운 전시가 무엇이고, 첫 개인전이 자신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현세진은 이번 개인전이 “시작을 위한 결론”이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즉, 스스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과정에서 답/결론을 주변인들의 조언과 응원을 통해 얻었고, 이를 발판 삼아 작가로서의 삶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자신의 첫 개인전은 그 내용을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현세진의 개인전, 특히 〈우리가 만나는 이곳〉은 자기 성찰적이기도 하면서 지속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미래를 전제한다.

시제와 함께 전시에서 중요한 축이 되는 주제는 ‘만남’과 ‘관계’이다. 그 관계 속에는 작가, 작가의 지인, 그리고 전시를 보러 온 관객이 포함된다. 볼풀에서 관객은 문장 공을 가져갈 수 있고, 본인이 남기고 싶은 문장을 색깔 공에 적어 남길 수도 있다. 나를 격려하는 독백일 수도, 누군가를 향한 고백일 수도, 꾹꾹 눌러 담았다 쏟아내게 푸념일 수도 있는 문장들은 다른 시간에 다른 관객과 만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간의 직접 대화가 아닌 문장의 교환으로 일어나는 간접적 소통이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유명인의 격언이나 경구 등을 짧게 보여주는 피드들과 마찬가지로 맥락이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는 말들로 소통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한다. 자신의 맥락에 적용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열려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에서 출발해 다양한 방향과 깊이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담고 있다. 관객 참여로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문장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전시공간 안에서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형성한다.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하고 전시를 하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그 자체의 의미를 찾아보며 걸어가는 작가는 드물다. 현세진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예민한 시선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뜯어보는 작가이기에 본인의 작업과 전시의 의미 또한 그러한 기준으로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분석했을 것이다. 각종 정치역사적 거대담론을 건드리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려는 현대미술의 트렌드 속에서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자신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현세진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의 개인전을 관람하면 너무 바쁘게 달려오기만 한 나머지 정작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스스로를 탐색해 보는데 너무 소홀하지 않았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이곳〉은 필자에게도 〈우리가 만났던 그곳〉이 되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필자 또한 그 기억을 계속해서 현재화하기 위해 “미술하는 삶에는 장점이 많다”라는 문구가 쓰인 공 한 개를 들고 와 책장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