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ger Scan : I was Here
i94 (미국 입/출국 기록) : 34°23'38.5"N 118°33'57.8"W,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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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변 설치
2016
Finger Scan : I was Here
i94(Arrival-Departure Record): 34°23'38.5"N 118°33'57.8"W,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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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nsions variable
2016
Finger Scan 시리즈는 미국에 외국인으로 머물면서, 개인의 존재가 시스템 상에 등록된 숫자, 나아가 실체 없는 디지털 데이터로 환원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제작되었다. 어디에나 시스템은 환원시키지만, 나의 몸이 타국의 영토에 머물렀을 때 그 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적 제약이 생겼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졌던 것처럼,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필요했던 몇가지 서류들은 내가 나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들이 바뀌게 되었다.
1. “Kilroy was here”
2차대전 유럽을 재점령해나가던 미군은 ‘Kilroy was here’라는 낙서를 가는 곳마다 그려넣곤 했다. ‘이곳에 킬로이(kilroy)라는 (가상의) 인물이 이미 왔었다’는 이 낙서는 내게는 새 서부개척시대의 상징처럼 보였다.
2. “Jose was here”
내가 있던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는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해서 넘겨준 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Kilroy가 있기 이전에 Jose(2016년 당시 가장 흔한 멕시코 성씨)가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벽에 ‘Jose was here’를 야광 스프레이 페인트로 써 넣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다)
3. i94, URL, original copy, scanner, 10 fingers
미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입국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입국시 받게되는 증명서 원본(original copy)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 증명서는 i94로 불리는데, 이전에는 입국 심사에 미국 비자 페이지에 스테이플러로 찍어주곤 했다. 하지만 이 문서는 종이가 쉽게 닳기 때문에 출국시까지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이제는 더이상 실물 i94를 여권에 달아주지 않는다. 대신, 미국 정부의 국토안보국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개인정보 몇가지를 입력하면 다운받을 수 있다. 이는 여권에 붙어있던 종이쪼가리와 마찬가지로 내 체류가 합법적임을 증명해주기 때문에 언제나 여권과 함께 제시해야 온전한 신원 증명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관공서에서 내 신원 증명을 위해 i94를 요구할 경우, 스크린으로 이를 보여주는것은 유효하지 않다. 항상 이것을 프린트해서 증명(original copy)해야 한다. 프린트한 종이는 위조되지 않은 것이며, 스크린 속 서류는 위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나는 이때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후원으로 유학을 가 있어서, 미국을 떠났다가 들어올 때마다 풀브라이트 측에 내 i94를 보내야 했다. 이때는 원본 문서의 스캔본이 원본과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다시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위변조 가능성에 생각이 미친다. 스캐너는 그런 점에서 신기한 물건이다. 종이 문서가 진짜라면, 그것을 스캔한 디지털 문서도 진품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종이 문서의 원본인 웹사이트 화면도 가지지 못하는 진정성을 스캔 파일은 가진다. 스캐너는 스캐너 헤드의 얇은 바가 지나가는 곳만 보는 지독한 근시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스캔한 대상이 물리적으로 그곳에 실재했음을 증명한다.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외국인들은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리 유쾌하지 않다.이때도 작은 스캐너가 지문을 훑어서 나의 물리적인 존재가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손 끝이면 충분하다는 듯, 얼굴은 스캔하지 않는다. (얼굴은 사진을 찍는다.)
i94가 인터넷 페이지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URL은 디지털 주소라 어디에도 물리적 실체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 몸이 미국땅에 현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시스템 상에서는 몇 줄의 디지털 데이터가 50kg 남짓한 육신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나아가 대체되는 듯했다.
4. I was here
움직이는 스캐너 헤드를 따라 내 손가락을 움직이면 살 색의 자국을 남긴다. 손 끝은 스캔이 된 그 순간이 지나면 더이상 같은 자리에 있지 않고 이미 움직여 갔다. 그럼에도 스캐너는 스캔 범위가 다할 때까지 손끝과 만난 순간을 무한히 연장시키면서 손가락의 의치를 착실하게 증명해낸다. 나는 이곳에도 있었고, 동시에 여기, 저기, 이곳, 그곳에도 있었다.
나의 물리적 현존(손 끝)과 그것을 증명하는 수단(스캐너)으로, 내 몸이 미국내에 있음을 입증하는 문서의 비물리적 좌표(URL)을 써 나간다. 인쇄되어야만 유효한 i94와 달리, 그 URL은 다시 종이에 프린트되어 기능하지 않는 이미지이자 독해해야 하는 텍스트가 된다. 실재하는 것과 실재를 지시하는 것이 끊임없이 전환되며 개인의 존재를 물질적으로, 혹은 비물질적으로 증명하는 두가지 방식이 길항관계에 놓인다. 시스템은 개인이 포획됨으로 작동하고 개인은 시스템의 증명이 필요하듯이. 나는 그 두 항 사이에서, 그곳에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 요구하는대로 가장 최근의 i94 문서를 다운받곤 했던 URL 링크가 죽었다. (https://i94.cbp.dhs.gov/I94/recent.html)
웹사이트가 바뀌면서 생긴 새 주소는 이것이다: https://i94.cbp.dhs.gov/I94/#/recent-results
*The URL I used to go to retrieve the most recent i94 is now dead.
(https://i94.cbp.dhs.gov/I94/recent.html)
The website is renovated and the new address is,
https://i94.cbp.dhs.gov/I94/#/recent-results